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웅변가 안티폰(Antiphon)은 기원전 5세기 후반에 살았던 인 물이다. 그는 기원전 411년 과두파의 쿠데타(oligarchical coup)에서,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전복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 을 한 자로 유명하다. 민주주의가 복구된 후, 안티폰은 반역죄로 재판에 처해 사형선고를 받는다.1 한편, 정계에 발을 들이기 전 안 티폰이 무슨 일을 하고 살았었는지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데, 알고 보면 그는 일종의 정신분석가였다. 슈도-플루타르크 (Pseudo-Plutarch) (3-4세기 AD)는 영웅전(Lives of Ten Orators)에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.
안티폰이 아직 시(poetry)에 몰두할 무렵 그는 마음의 괴로움을 치료하는 방법을 개발했는데, 의사에게 신체질환을 치료받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방법이었다. 그는 코린트(Corinth) 아고라 근처에 개원을 하고는, 말을 통 해 괴로움을 낫게 하는 치료법을 발견했다는 내용의 광고를 냈다. 그리 고 그를 찾는 환자들의 괴로움의 원인을 탐구함으로 그는 그들의 고통을 경감시켰다. 그러나 그는 이 직업이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다고 여겨 웅변으로 진로를 바꾸었다. (833c-d)
나는 이 짤막한 일화가 재미있으면서도 의미심장하다. 이는, 인 간의 삶에는 정신분석 (내지는 그와 비슷한 그 무엇)을 자꾸만 찾 게끔 하는 압력이 내재된 동시에, 이 힘을 거부하는 내면화된 사회 적 압박이 함께 존재한다는 점을 시사한다. 정신치료보다 웅변이 보다 자신의 품위에 걸맞다는 결심은, 결국 법대에 진학하기로 마 음먹는 행보의 기원전 5세기 버젼이다.
오늘 나는 프로이트의 저술 내에서도 이와 유사한 정신분석의 외면이 발견된다는 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. 아이러니하게도